최근 문화재청은 매장문화재조사와 관련한 여러 지침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사항도 일부 있으나, 향후 매장문화재의 보존과 조사에 악영향을 끼칠 독소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 매장문화재의 조사 및 보존 그리고 연구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우리 학회의 회원들은 이번에 새로 제정된 문화재청의 지침 중 가장 문제가 심각한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첫째, 7월 30일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문화재청이 제출한 안에 따르면 3만㎡ 이하 면적의 지표조사는 고증, 학술연구 결과 등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실시하도록 변경되었다. 고증이나 학술연구등의 근거가 있는 경우에는 지표조사를 하지 않더라도 보존조치하거나 발굴조사를 실시하면 되지만, 근거가 없는 경우야 말로 오히려 지표조사가 필요하다. 근거가 없다는 것은 지하에 매장문화재가 존재하는지 여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이며, 그간 지표조사와 시굴조사를 통해 중요한 유적이 발견된 경우는 국내외에서 너무도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표조사 자체를 원천적으로 무력화시킬 위험이 있는 이번 조치는 “문화유산은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문화유산헌장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만 아니라 문화국가로서의 자부심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3만㎡ 이하의 면적에 대한 지표조사 실시 여부를 해당 지자체장의 권한에 맡겨두는 현행 규정을 바꾸어, 형질변경이 이루어지는 모든 사업에 대해 지표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현재 3만㎡ 이하 면적의 문화재 지표조사를 국비로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지표조사 대상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한다고 하여도 사업자에게 하등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국가에 의한 정밀지표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이를 유보하거나 지표조사 실시의 의무 면적을 적어도 1만㎥ 이상으로 수정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발굴유예 조치가 단순성토에 한정되던 것을 건축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매우 심각하게 우려되는 부분이다. 단순성토의 경우에도 매장문화재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건축시공까지 허가하는 것은 매장문화재의 보존을 보장할 수 없는 조치이다. 따라서 단순성토이든 건축시공이든 발굴유예 조치는 지하에 포장된 매장문화재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 판단할수 있는 문제이다.
즉 시굴조사를 통해 유구의 시대·성격·특징·잔존상태·중요도·매장된 깊이 등에 대한 기초자료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발굴유예 조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여겨진다. 만약 어떠한 이유로든 발굴유예 조치가 이루어진 지역의 경우에는 지적도상의 해당 필지에 ‘매장문화재조사 미필’ 지번으로 지적공부(대장)에 기재해야 한다. 그래야만 향후 언제라도 필요한 상황(재개발 등)이 발생하면 매장문화재의 구제발굴이 가능할 것이며, 그 이후 지적공부에 ‘매장문화재조사 필’로 수정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지표조사에 대한 사업시행자의 이의제기 절차를 마련하거나 매장문화재 보존결정 기간을 단축하고, 기업,주민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취지는 좋다고 본다. 다만 지표조사 결과나 매장문화재의 보존결정이 사업에 불리하게 진행되는 경우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사업자는 없을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가 잘못 운영되면 사업시행자의 지나친 개입으로 인하여 정밀한 지표조사나 매장문화재의 보존결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7월 28일자로 발표된 ‘발굴허가 관련 업무처리 지침’에 의하면 앞으로 대학박물관, 대학부설연구소, 공립박물관 등은 학술조사에 한하여 발굴을 허가하고 구제발굴 참여를 원칙적으로 불허한다고 한다. 매장문화재를 다루는 고고학 전문인력의 기초 교육이 대학에서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대학이 점차 발굴조사에서 배제되어 학문후속세대의 교육이 어려워진 현실에서 문화재청의 이번 지침은 앞으로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대학박물관 등이 학술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술조사에만 전념하라는 지침은 다른 조치와는 반대로 대학박물관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대학박물관 등이 발굴조사에서 배제될 때 제대로 된 고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인력들이 발굴조사를 담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위험성은 매우 높아진다. 더구나 대학에서의 연구경력(학위취득)을 조사원 자격기준에서 배제시킴으로써 대학에서 고고학 교육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것은 고고학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미래세대가 제대로 교육받고 성장하지 못한다면, 향후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는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대학에서의 고고학 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
우리 학회의 회원들은 매장문화재와 관련된 중요 사항에 이상의 독소 조항들이 포함된 업무지침이 학계를 포함한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 청취 절차 없이 졸속으로 진행되는데 대해 경악하지않을 수 없다. 사업시행자의 고충을 덜어주고 개발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정부의 다른 부서의 역할이다. 매장문화재를 개발의 장애물로 여기는 그릇된 발상이 규제완화라는 구호를 등에 업고 나타나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본다.
문화재청의 고유 업무는 문화재를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고, 부득이 훼손되는 문화재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기록으로 남기게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 학회의 회원들은 문화재청이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여 올바른 대책을 마련하기를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2015년 8월 26일
한국고고학회, 영남고고학회, 중부고고학회, 호남고고학회, 호서고고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