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 시내에 소재하는 고대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복원하는 사업단이 출범하였다.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존하여 후손에 물려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엄중한 책무임은 사실이지만 세대별 우리 유산에 대한 자긍심과 문화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역사교육자원, 관광자원, 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단계가 되었다. 그동안 발굴조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원상을 잘 간직하고 있던 월성에 대한 조사는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밝히고 고도 경주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바, 우리 학회들은 월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발굴조사는 일정 부분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에 최대한 신중히, 그리고 최고의 전문가집단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민족의 귀중한 재산인 문화유산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문화재 조사로 인한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조속히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발굴조사를 신속히 진행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지역 정치인의 입에서 월성의 왕궁터 발굴조사에 10개 이상의 발굴조사기관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시간을 단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월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문화재청 산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로 일원화시키려는 계획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되었다. 다수의 기관이 단일 유적에 투입되면 발굴조사 기간이 축소될 것이라는 논리이다.
하지만 그 동안의 대규모 발굴조사를 자세히 되돌아보면 다수의 기관에 의한 연합발굴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음이 사실이다. 여러 기관이 투입되어 통일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조사의 결과가 제대로 공개되지 못하던 사례를 여러 번 보아 왔다. 게다가 다수의 발굴기관들을 입찰방식으로 무한 경쟁시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저가입찰과 부실발굴이 속출할 것이다.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경주 월성은 개발에 방해가 되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1000년 왕국 신라의 왕궁터이며 신라 멸망 후에도 1000년의 이상의 시간을 파괴되지 않고 원상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국내에 몇 안 되는 귀중한 문화유산은 충분한 시간과 체계적인 계획을 세운 후에 공신력 있는 국가연구기관이 체계적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정상이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잘 남아 있는 신라 왕궁터를 성급하게 파괴하여야 한단 말인가?
신라 왕경의 복원사업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추진되어야 하며 핵심구역인 월성을 3~5년 내에 모두 발굴조사하려는 조급함은 버려야 한다. 중국에서는 진시황릉의 발굴조사를 수 십 년간 진행하고 있으며, 일본의 나라현 고대 도성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월성의 발굴조사는 그 행위 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이며 학생과 시민이 참여하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우리 학회는 신라 10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도 경주에 대한 조급한 개발에 앞서 신중하고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하며 아래의 사항을 요구한다.
고도 경주의 주요 유적은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므로 전체를 발굴조사하려는 계획에 반대한다.
고도 경주의 주요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시급한 구제발굴조사가 아니므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국가연구기관이 전담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재 당국은 경주의 주요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와 연구를 항구적으로 담당하면서, 발굴조사의 통합 기술개발과 표준화 등을 연구하고 시행할 수 있는 기구를 경주에 설치하여 육성할 것을 촉구한다.
유적의 발굴조사는 전문적인 학술조사의 과정이므로 정치권은 발굴조사의 기간과 방법, 조사단의 구성에 불필요한 의견 제시를 자제하고 철저하게 학술성이 보장되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2014년 11월 7일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상고사학회, 중부고고학회, 호서고고학회, 호남고고학회, 영남고고학회, 백제학회, 신라사학회, 한국고대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