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서의 이론이라는 것은 실물자료를 근거로 생성되는 것이고, 서구의 고고학이론은 서구의 풍토와 역사 그리고 문화를 향유한 사람들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온대지역에 속하면서 몬순기후인데 전국의 70%가 산이면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으며, 취락은 산을 배경으로 평지와 하천을 바라다 보는 자연환경은 어느 외국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말해서 우리나라의 문화는 산과 강(바다)과 좁은 평야를 토대로 생계가 영위되어 온 것이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계형태의 특이점은 고유한 문화를 창조하고 사회의 형태도 산과 강으로 구획되어 고유할 것입니다. 그러한 생태계와 사회 문화에서는 당연히 인간의 의식체계도 고유할 것입니다.
선진연구의 이론을 차용하여 논지를 보완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논문심사를 하면서 인용하는 이론에 대해서는 과연 그 이론이 형성된 유적이 한반도 해당 유적과 동일한 생태계인가? 동일한 생계인가? 동일한 사회단계인가? 동일한 규모의 집단인가? 동일한 상징을 가진 것이 있는가? 등의 의문을 던집니다. 이렇지 못하고 어찌 외국 것을 가져다 한반도 문화에 이론을 이식하겠습니까?
선진이론을 가져다 한반도의 청동기시대에 접목시켜서 해석해버리면 한반도의 청동기시대가 서양 혹은 서남아시아의 문화와 같다는 것인가? 더구나 시대 혹은 시기를 초월하여 동일하게 되어 버린 것인가? 때로는 그러다보니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에도 해당되고 조선시대에도 해당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게 된다는 폐단을 초래합니다.
선진이론을 저는 이용할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영문서적을 쉽게 읽지 못하는 제 능력때문입니다. 그래서 서구의 선진 고고학의 단면 편린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도서가 번역출판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저는 학생들과 그런 서적을 윤독하면서 여러번 읽고있습니다. 이해도 못하는 것이 태반이지만.... 선진고고학으로 밝혀진 각가지 이론들을 이해하고 음미하면 즐겁습니다. 비로소 내 자신이 커가는 것을 느낍니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났다는 상상도 합니다. 그러다 언젠가 영국과 독일의 유물을 편년해보고싶다는 욕망을 가져도 봅니다.
심사위원님의 평에서 제 논문이 선진연구만 인용되면 바른 측면도 있다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아니면 외국 연구에 대한 표절이라는 것인지?
하여튼 한국의 청동기시대 취락연구에서 제가 직접 인용할 외국의 연구성과는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판단합니다. 왜냐하면 청동기시대 송국리문화의 유물복합체를 가진 문화와 우리의 산하와 같은 환경에 둘러싸인 취락경관을 가지면서 쌀을 생산한 역사상의 어떤 나라도 없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제가 학생시절일 때 구주대학원의 요코야마교수님께서 술잔을 들고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는 현재가 중요한 민족지자료라고 생각합니다. 문화, 사회, 생산과 유통, 집단, 상징과 가치, 계층, 의식 등등의 수많은 이론고고학의 주제가 가장 발달한 21세기 사회 속에 녹아있습니다. 더구나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생성한 것이므로 더욱 저의 고고학 과제에 적합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선진이론을 인용한 제 논문을 그때마다 많은 오류를 지적해주신 심사위원님도 많습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
굳이 심사위원이 아니시더라도 이번 기회에도 이론고고학에 대한 제 인식에 대해서 지도를 바라며 후학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토론에 참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도 한국의 실물자료에 서구의 이론고고학을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싶습니다. 그 속에서 어떤 결과를 창조할수 있을지? 못해본 연구라서 꿈을 꿉니다. 한국고고학이 가야할 길이기도 하겠습니다. 이론의 별을 바라다보면서 유물과 유적이라는 배와 노를 저어가는 것이 신세계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100년 뒤쳐진 우리의 고고학환경을 깊고도 푸른 새로운 고고학 바다의 꿈과 함께!
2021년 3월 23일 안재호 올림